네덜란드-남아프리카 공화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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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20세기 이전
3. 20세기
4. 21세기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네덜란드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관계. 남아공은 영국의 지배를 받기 전에 네덜란드인들이 남아공 지역에 정착했었다.


2. 20세기 이전[편집]


대항해시대 이후에 네덜란드인들은 지금의 남아공 서부 지역에 도착했다. 남아공에 정착하던 네덜란드 이주민들은 남아공 서부 현지 주민들(코이산어족)과 조우하였으나, 이들은 남아공 동부의 반투족 계통 흑인들과 다르게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남아공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은 아프리카너가 되었다. 남아공에 네덜란드 정착지가 생겼으며, 현재 남아공 서부 인구의 상당수는 아프리카너 남성들과 코이산족 여성들간의 혼혈 후손인 케이프 컬러드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너들이 점점 동진하면서 반투족 주민들과의 갈등이 빈발했고, 아프리카너들은 기독교 근본주의에 바탕을 둔 선민 사상을 가지고 흑인들과 갈등하면서 고립되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우수한 기마술과 사격술, 전술로 무장한 아프리카너들이 흑인들에게 압승을 거두었으나, 내륙에 정착한 아프리카너들은 결국 본국 네덜란드와의 통신과 교류가 원활하지 못하게 되었다.

1806년 네덜란드가 프랑스에 점령된 틈을 타서 영국은 네덜란드 식민지이던 남아공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19세기 후반에는 남아공 내륙을 두고 보어인들과 보어 전쟁을 치렀다. 보어 전쟁은 결국 보어인들의 패배로 끝났으며, 이후 남아공 지역은 네덜란드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3. 20세기[편집]


20세기에 남아공 지역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후에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당시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서 네덜란드도 남아공을 비판했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했으며, 남아공 아프리카너들의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해 거부감이 강했다 한다. 네덜란드도 남아공과는 수교를 하지 않았고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하에서 네덜란드와 사이가 안 좋아졌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80년대말에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90년대초에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무너진 뒤에 네덜란드는 남아공과 다시 수교했다.


4. 21세기[편집]


현대에 남아공은 네덜란드와 사이가 좋은 편이다. 남아공은 영국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매우 우호적이다. 남아공의 공용어인 아프리칸스어네덜란드어에서 갈라져 나온 독자적인 언어이고 보어인들은 남아공에 정착한 네덜란드인이 시초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개최국 남아공은 조별예선에서 광탈했지만 대신 아프리카너들의 본가(?) 네덜란드가 준우승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남아공 내 아프리카너들과 네덜란드인들과의 친선 관계도 증진되었다.

남아공에서 아프리칸스어가 쓰이고 있지만, 아프리칸스어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하에서 쓰이다보니 90년대부터 남아공 정부는 영어를 보급하고 사용하는 것을 시행하고 있다.

2022년 1월 23일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은 남아공에서 온 화물기 앞바퀴 부분에서 한 밀입국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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